나눔

고난주간 새벽설교 3

마태복음27장11-26

한국에서 허니 버터칲이라는 과자가 나오자 마자 품귀 현상이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사람들이 이 과자를 사 먹기 위해서 웃돈을 주고 사먹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이 과자에 열광한 이유는 이 과자가 사람들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sns를 통한 입소문과 그로 인한 군중심리가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한국에서 사재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민심이 흉흉하고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되면 생필품인 라면과 물, 식량 등이 바닥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들이 모두가 다 군중심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군중심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서 군중심리 동조실험을 했는데 여섯 명의 실험자에게 틀린 답을 말하게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을 그 실험에 투입하였는데
70%의 사람들이 틀린 답에 동조하고 그것이 맞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은 왜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서경현 교수는 군중심리는 인간의 본능과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집단행동을 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위험을 피하거나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때 타인을 참조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군중심리에 끌려다니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군중심리에 끌린 사람들의 외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만든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로마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찬성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동족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 간 것입니다. 바로 군중심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20-2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본문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이미 각본을 짜 두었습니다. 여기서 권하여 라는 말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권하여 라는 말은 선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께 사형을 받을 만한 어떠한 죄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반문하는 것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

그러나 빌라도도 군중심리에 하나가 된 폭도로 변한 유대인의 민란이 두려워서 군중심리에 무릎 꿇어 버렸습니다. 힘이 곧 정의인 세상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분명한 잘못도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예수를 죽는데 내어 놓은 것입니다.
비록 빌라도가 군중심리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치욕스런 이름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도신경에 그의 이름이 불명예스럽게 나옵니다. “본디오 빌리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본디오 빌라도의 후예들은 본디오 빌라도 가문의 족보를 없애 버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치욕스런 이름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를 죽이라는 폭도나 군중심리에 무릎 꿇고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놓은 빌라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의에 눈 감아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익집단으로 교회가 변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군중심리에 의해서 정의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 만큼 자신의 이익에 약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관계나 사람의 힘에 편승해서 살아가기 쉽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것이 무섭습니다. 새계명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될까봐 저 자신이 그런 이익집단의 대변자로 빌라도처럼 세워질까봐 그것이 저를 가장 무섭게 합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가 항상 평탄한 교회가 아니었음은 서신서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 3장18절에 보면 바울이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진리를 바로보지 못하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애절한 한탄을 쏟아 놓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여러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휩싸여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서 교회를 풍비박산 내려고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애가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믿음에 바로 설 때만 자기를 믿고 사랑하십시오. 여러분 자신도 그리 믿지 못할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감정에 매몰되어서, 군중심리에 도취되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놓는 폭도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놓은 사람들이 다수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두 사람의 선동으로도 얼마든지 군중심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군중들과 빌라도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에 얼마든지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 하십시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사람들이 2000년 전에 폭도들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24-2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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